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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 OC/.ssul

낼모레는 쪼꼬의 날

진홍이 시작되었다.

‘우정, 유대, 사랑… . 그런 걸 기념한다는 것 치곤 매번 과격한 놀이를 시키는구나… .’

라고, 더블-2는 퍽 수호자답지 않은 생각을 한다. 샤크스가 축제에 대해 열성적으로 떠드는 모습에 대고 표정관리를 할 필요 없는 몸이라는 점을 다행이라고도 여기면서. 더블-2는 태생이(라는 말은 이상하지만, 고스트의 표현을 빌렸다.) 조용하고 분쟁을 피하는 성정이어서 시련의 장이라면 치를 떨었다. 늘 큰 목소리로 시련의 장을 권유하는 목소리도 견디기 힘겨워 평소에는 샤크스의 그림자라도 눈에 비치면 도망가기 일쑤였다.

그렇다면 이런 축제의 주간에는 선봉대 복무는 잠시 내려 두고 여타 다른 헌터처럼 자유를 즐기면 좋으련만, 여기서도 또 쓸데없는 성실함과 유도리라곤 쥐뿔도 모르는 뻣뻣한 태생적인 성격 탓에 자발라를 보러 왔다가 그 꼴 그대로 붙들려 어쩔 수 없이 들으나 마나 한 소리를 이렇게 또 듣고 만다.

그는 길고, 열렬하고, 시끄러운 연설을 기껍게 들은 체한 뒤에 겨우 자유를 얻는다. 몹시도 지쳤지만, 이번 진홍에도 들뜬 분위기나 달콤한 향내만 즐기고 있자 하면 붉은 기가 내려가 있을 것을 기대하며 쉴 곳을 찾아 제 고요한 은신처를 향한 발걸음을 뗀다.

*

축제가 시작된 지 어언 3일차다. 탑 한가운데에서 자신의 맹약자가 되어 달라는 말을 대단히 진중한 고백처럼 하는 수호자들을 여럿 봐 왔기 때문인지, 라훌의 천막 앞 공터에 촛불을 나열해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는 이름 모를 헌터의 행태도 그리 기묘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그 요란한 모습에는 기가 질려 자리를 피하려 시장을 향해 걷는데, 돌연 팔목이 붙들린다. 발걸음을 멈췄다.

“ ?... “

“나랑 진홍 해! 맹약자가 되어 줘!”

난데없이 초면의 워록에게서 고백이 떨어진다.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어떤 제스처를 취하기도 전에 둘 사이를 가로막듯이 작은 빛이 날아든다.

“아아아악! 수호자, 처음 보는 수호자에게 그런 식으로 말을 걸면 안된다니까요! 실례했어요, 헌터. 저희 수호자는 무시하세요. 이제 막 부활해서 아직 애나 다름 없거든요… .”

아아아, 이런 말을 들어버리면 또 쓸모없는 오지랖과 상상이 펼쳐지고 마는데. 막 부활했다는 수호자가 샤크스의 열렬한 연설에 속아 치열하고 냉혹한 시련의 장에 던져져 잔뜩 좌절을 맛보고 절망에 휩싸이는 모습… . 결국은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탑에서 벗어나 제 고스트까지 해한 뒤 탈선하는, 처음에는 작고 귀여웠으나 선봉대를 등지고 흑화해 버리는 아기 워록의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그런 걱정을 참지 못하고 더블-2은 무거운 입을 연다.

“아니야. 괜찮아… . 그런데 진홍은 왜?”

“초콜릿 먹고 싶어.”

애나 다름없다는 고스트의 말이 사실인지, 눈이 맑고 말투도 해맑다. 초콜릿이라. 그러고보니 진홍 축제에 참여하면 그런 것도 줬었지… .

“…초콜릿이라면 내가 조금 갖고 있어.”

주머니를 뒤적여 사랑스러운 분홍색 하트 형태로 포장된 그것을 슥 내민다. 원래도 맑던 눈망울이 초콜릿을 보자 일순 크게 빛난다. 그와 거의 동시에 사양이나 감사의 말도 없이 손바닥에 있던 초콜릿이 냉큼 워록의 입 안으로 사라진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고스트는 기절할 것처럼 미안해하기 시작했지만, 수호자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달콤함을 즐긴다. 그래, 너라도 행복해 보이니 다행이다. 품을 더 뒤적여 가진 것을 전부 털어 손에 쥐여주니 초콜릿을 쥐는 족족 입 안으로 건너간다. 다 먹는거니?... 여기서?... 다른 걱정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는데 지금 말해봤자 듣진 않겠지… . 지적 않고 조용히 지켜보다 초콜릿을 전부 입에 넣어 만족한 듯한 낯에서야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시련의 장은 이제 막 부활한 수호자가 발을 들이기엔 조금 위험하니ㄲ…”

“더 먹고 싶어! 그러니까 나랑 진홍하자!”

“아아악 수호자아아”

걱정, 만류, 겁을 주려는 으름장… 모든 이야기를 털어보아도 그런 지루한 입씨름 끝에 승리한 것은 작고 귀여운 워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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