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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 OC/.ssul

□ 어둠을 받아들이시오

"받아. 피라미드 조각이야."

금속이라기엔 가볍고 플라스틱이라기엔 단단하다.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는 물질이 손 안에 떨어진다. 검지와 엄지로 붙든 채 이리저리 돌려보다 가볍게 손에 쥐었다. 검은 조각을 훑던 시선이 다시 돌아오자 눈 앞의 엑소가 입을 연다. 상대방을 가늠하는 듯한 올곧은 시선. 마주하기 어렵다. 그러나 피했다가는 쥐었던 파편 또한 빼앗길테지. 곧은 성정의 사람은 늘 껄끄럽다. 

"바로 힘을 주지는 않는군요."

"그래. 시험에 통과해야해. 나는 어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무너진 사람들을 알아. 그들은 스스로 무너져내릴 뿐만 아니라, 주변을 파멸로 몰지."

뭘 그렇게까지. 분위기를 풀기 위한 가벼운 농담조의 불만 따위는 그 앞에 내놓기엔 부적절하다. 속으로 삼키며 흐르는 이야기를 듣는다. 인공 성대에서 흘러나오는 낮고 진지한 목소리에 수심이 밴다.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지만 그는 너머의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어둠은 네게 끊임없이 속삭여 있는지도 몰랐던 충동에 불을 지필거야."

말소리가 이어진다. 그래봤자 위험한 힘이니 조심해서 사용하라는 뻔한 잔소리, 그렇게 넘기려던 마음은 어느새 휘발되었다. 다른 것을 보는 듯한 눈빛이 마치 저를 꿰뚫는 듯 하다. 찬바람이 바닥을 훑는다. 심장이 불안하게 뛰어 속이 뒤섞인다.

"한번이라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순식간에 헤어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아." 

바람을 따라 눈발이 낮게 들뜨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들르는 이가 적어 늘 희고 맑은 눈밭에 겨우 한 줌 있던 발자국조차 흐려졌다. 눈은 다 가라앉았건만, 애써 외면하며 지내는 과거가 다시금 떠오른다. 있는 줄 몰랐던 충동.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 총소리. 그리고 빗소리... . 이미 한 번 겪어낸 일들이 한꺼번에 덮쳐온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손에 쥔 것을 확인하려고. 손에 쥔 것이 가진 각을 확인하려 주먹을 바투 쥔다. 쥔 것은 망가진 고스트 따위가 아니야, 라고 속삭이듯이.

"충동에 빠져 맹목적으로 변한 사람은 소중히 여기던 것 마저 스스로의 손으로 부수게 돼. 중요한지 무엇인지 알 수 없어지고, 점차 자아의 경계가 흐릿해지다가... ."

 제법 효과가 좋았다. 치솟은 긴장감이 간헐적으로 몸을 훑어대기에 작게 심호흡했다. 몸이 떨리는 것이 추위에 몸서리 치는 것으로 보이길 바라며 내리깐 시선을 다시 올린다. 맹목적이고 좁은 시야 속에서 누군가의-어쩌면 자신의-망가진 모습이 떠올랐으나 거기까지였다. 집중해야 했다.

'... 사실 다 알고서 하는 말이래도 믿겠군.'

농담은 결국 늘 저를 위한 것이었다.  

"결국은 어둠에 종속되는거지." 

"무서운 이야기를 하시네요."

"제법 흔한일이야. 그러니 환청이 들린다던가, 어둠이 네 고스트의 입을 빌려 무언가 떠든다던가, 뭐 하여튼 당장 뭘 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치솟는다던가하면 바로 나에게 찾아와."

"네, 그럴게요. 걱정마세요."

"그래, 행운을 빌게."




유로파에서의 추위에 비하면 지구의 초겨울은 따뜻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집에 돌아와서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군 뒤에 따뜻한 핫초코를 마셨다.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도 한 번 할퀴어진 심정에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것이 필요했다. 홀짝대며 잔을 거의 다 비우니 그제서야 몸이 풀렸다. 소파 앞 테이블에 잔을 내려두고는 나른한 몸을 소파에 기댔다. 피라미드 조각은 여전히 손 안에 구르고 있다. 강하게 쥐고 눈을 감는다. 존재를 겨우 의식할 수 있었던 먼 소리가 점차 가까워진다. 풀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는 곧 벌레가 발걸음하는 소리로, 마침내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로 바뀌어 귓가를 간지럽힌다.

환청, 망상... . 그런 것들은 이미 저에게 지나치게 익숙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익숙한 빗소리와 비정상적인 심박수. 끊임없이 신경을 갉아내며 저를 충동질하는 목소리. 그리고 마음껏 그에 동조하는 말라 비틀어진 이성... . 전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힘을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다. 

그의 앞에서는 애써 외면했던 과거가 다시금 뇌리를 스친다. 눈을 감았는데도 그 앞에 그려지는 풍경이 황량하고 삭막하다. 잔뜩 젖은 땅에 끊임없이 비가 떨어지고, 어디서는 아련하게 녹이 슨 냄새가 난다. 괜찮아, 이겨낼 수 있어. 다 지난 일이다.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으니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미간이 좁아든다. 알 수 없이 속살대던 말소리는 어느 새 저를 비난한다. 시끄러워. 알아들을 수 있게 변한 목소리가 곧 익숙해진다. 낮고 냉정한 어떤 남자의 것으로. ... . 아니, 잠깐만. 이 목소리는... .

절로 눈이 뜨인다. 식은땀이 한 줄기 관자놀이를 타고 흐른다.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축축한 손으로 귓가를 더듬는다. 분명히 너의 목소리였으므로. 멍하니 충격에 젖어 멀거니 제 손만 내려다본다. 

'...아니야. 이안은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아... .'

..그런 생각과 함께 다시 눈을 감는다. 뺨에 찬바람이 스치면 어루어 만져주던 손길과 입술이 맞닿으며 피어오르는 온기 같은 것을 쉽게 상상해낸다. 귓바퀴에 끈질기게 붙어 그의 목소리를 흉내내던 목소리에 따스함을 덧입힌다. 거기에 매달려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는 것이 골몰하니, 에브, 그렇게 부르며 나를 향해 웃는 미소가 눈 앞에 선명해진다. 희뿌옇고 푸른 눈밭에 네가 가장 선명했다. 다시 눈꺼풀을 들어올리며 피라미드 조각을 내려다본다. 칼바람은 모두 멎은 채다. 

이 힘을 얻고자 한 것은, 그래. 너를 위해서다. 빛은 약해졌고 어둠이 다가왔다. 보다 더 치밀해져야 했다. 무엇인지 알고 대비하며 남들은 쉽게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나의 힘이었다. 이것을 두려움을 핑계로 놓칠 수 없었다. 너를 위해선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어. 

'...한 가지 이유에 매달려서는 안돼. 맹목적이 되어선 안되는데... .'

낮게 뇌까려도 결국 나는 네 아래에서야 겨우 숨을 쉬게 된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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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ave-the-world.tistory.com/136 < 이쯤에서 다시 보기 ㅎ.. 본문의 해설글 비슷한것입니다 해설글이 좀 더 긴 웃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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